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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업계 (전) 종사자로서 민희진 사태 빡치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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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4-04-25 23:21:08

저는 사실 광고공부하고 광고 업계에 있다가 지금은 유관업계로 옮긴 케이스인데요, 광고가 아이돌 제작과 똑 닮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크리에이티브와 아트 사이 블러 라인에 위치한 그 무엇이라는 점, 내 돈이 아니라 남의 돈으로 하는 작업이라는 점, 많은 사람의 노력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닮아있는 점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 관점에서 이번 사태에서 빡치는 점이 많아 글을 적어봅니다.

1. CD의 에고 : 민희진이 그렇듯이 광고계에도 스타 cd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저술, 강연을 통해 본인 포트폴리오를 설명하며 자신의 크리에이티브와 디렉팅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설파하죠. 하지만 그 작업이 정말 그 분만의 통찰력과 예술성으로 완성된걸까요?
설마요… 한 작품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수많은 내외부 컨펌 과정과 비용 타당성 검증, 더 나아가 피저빌리티 체크 과정이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raw한 아이디어는 수없이 깎이고 돌려지고 짜쳐지는 과정을 거치죠.
그럼 그 이후의 일부는 더 좋아지고 일부는 짜쳐진 아이디어는 그 프로젝트에 참여힌 모두의 것입니다. 만들어질 수 없는 아이디어는 가치가 없으니까요. 근데 에고가 강한 디렉터들은 그 모든 과정을 평가절하하고 raw한 본인의 아이디어 그 자체를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깎여지는 과정을 범부들의 불필요한 간섭이라고 생각하고요. 근데 그렇게 생각하면 내돈으로 사람써서 결과물 만들면 됩니다. 남의 예산 안에서 초기 아이디어에 가까운 결과물을 타협해서 내놓는 과정은 간섭이 아니라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필수 과정이에요. 놀랍게도 예술병 걸린 에고 높은 cd들은 이를 이해 못합니다. 결국 이들은 퇴사 후 기획사를 차리고 영업을 뛴 이후에나 알게되죠. 광고는 예술이 아니라는걸요.

2. 레퍼런스 : 까놓고 얘기해서 이 시대의 상업 예술 중에 레퍼런스가 없는 예술이 있을까요? 광고의 경우 스토리보드 단계에서부터, 더 나아가 광고주 피티 단계에 시사하는 영산 스토리보드에서부터 영화, 드라마의 특정 장면 레퍼런스부터 심지어 광고 레퍼런스도 있습니다. 그리고 창피한 얘기지만 때론 그 스토리보드가 실제 촬영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죠. 근데 그게 상업예술입니다. 잘 나가는걸 참고하고 개선하고 하죠. 레퍼에서 자유로운 상업 예술가는 단 한 명도 없을거라고 자신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참고한 레퍼런스는 재창조고 내꺼에 영향받은건 카피다? 너무 이기적인거 아닌가요?

3. 다수의 노력 : 1과 이어지는 내용이지만 상업예술은 정말 엄청나게 많은 사람의 노력이 들어갑니다. 작은 광고 영상도 기획+ae+감독+조명+pd+연출부+광고주+출연자+로케헌터 등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협업하고 현실성을 타협해 내놓는 결과물이에요. Raw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고 ‘이건 내꺼’라고 주장하는건 그야말로 광고홍보학과 1~2학년 학생들이나 할 유아적 생각입니다. 그걸 ‘내꺼’라고 주장하는 순간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은 그냥 엑스트라 정도로 격하되는거죠.

물론 업계의 차이가 있으니 민희진 사건과 다른 점도 있을거라 봅니다. 근데 빡치는 트리거는 같아요. 의사결정권자에 가까운 위치에 있는 디렉터가 자신의 아이디어는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타인의 노력은 격하하며 심지어 다른 사람들의 창작물은 너무 쉽게 카피 누명을 씌운다. 심지어 그 지리하고 구차한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말이죠.

진짜 사회성이 1이라도 있고 업계에 대한 의리가 조금이라도 있음 우리 뉴진스 얘기하면서 그리 엉엉 울고 난 후에 아일릿 카피 그룹이라고 그렇게 역정 못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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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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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5 23:13:50

뭐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고 그런 인간들이 잘 나가는 게 참 뭣같은 세상이긴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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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4-04-25 23:17:18

저는 생각보다 회사 인적 자원과 명성/자본의 급에 대해 너무 쉽게 보시는 분들이 많지 않았나 싶기도

스타 CEO/스타 임원 만들기 열풍에서도 비슷한 느낌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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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5 23:21:37

황정민이었나? 누구였죠? 모두가 잘 차린 밥상에서 수저만 들었다고.. 결과적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모두 노력하는건데 자기애가 강할수는 있고 나쁘지 않다 생각하는데 보이지 않는곳에서 자신을 위해 일해주는 사람들의 노력은 생각하지 않는것 같아서 공감하기 힘들더라구요.

2024-04-26 02:05:46

구) AE로서 공감이 되네요

'디렉터'로 본인의 역할과 능력을 너무나도 대단히 크게 생각하는 CD들이 

그렇게 클라이언트 바보 취급하면서 본인만이 답이고 진리라고 생각하셨드랬죠 ㅋㅋㅋ

저는 이번 사건 보면서 예전에 스좋이 빙그레 건으로 광고주 들이받는 언플했던 일이 생각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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